「옛날 옛날에, 정말 커-다란 궁전이 있었어요.」
「……!」
또다. 어두컴컴한 공간 안에서 최대한 눈을 크게 뜨고 감으면서 여러번 깜빡이자 보이지 않던 시야가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요새 들어 자주 꾸는 이상한 꿈. 그 꿈은 나와 또래로 보이는 한 남자애가 다리를 모으고 앉아 동화 이야기를 얘기하는 꿈이였다. 처음은 이게 뭐지, 싶어 그 아이에게 말도 걸어봤지만 그 아이는 내 말을 전혀 듣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아이에게 다가갈려니 그 녀석과 나의 거리는 좀 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악몽인가 싶어서 일어나보려고 애를 써봤지만, 나는 꿈 속에서 갇힌 듯 그렇게 꿈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저 일어나는 대로 일어날 뿐… 오늘도 여김없이 꾸는 이상한 꿈에 나는 자리에 앉는다.
「그 궁전에는 찬열왕자라는 정말 멋있는 왕자가 살았어요.」
「……내 이름?」
「그 왕자는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고, 모든 것에 훌륭한 그런 왕자였답니다.」
「……!」
그 말을 끝내자마자 녀석은 책을 덮더니 오늘은 다른 날과 달리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했다. 처음으로 마주보는 두 눈이라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꽁꽁 얼어붙어있었다. 처음으로 마주한 두 눈을 보고 느낀점은 아, 깊다. 였다. 평소 또래와 같은 초롱초롱한 눈도 아니였고, 공부에 찌들려 포기하고 싶은 눈도 아니였다. 그저, 정말로 빠져버릴 것만 같은 깊은 눈이였다. 그렇게 한동안 눈만 쳐다보고 있었을까, 나는 용기내서 말했다.
「…저, 저기…」
「……」
「난, 찬열이야, 박찬열. 넌… 이름이 뭐야?」
「……」
아, 오늘도 실팬가. 계속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느낌에 이제는 점점 등골이 오싹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 꿈을 꿨었지. 이제는 그만 꾸고 싶기도 한데… 점차 복잡해져와 지끈거리는 머리를 살짝 감쌌다. 녀석은 여전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난 그런 눈빛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
아, 벌써 깼나. 눈을 번쩍 뜨자 낯선 내 방의 천장이 보였고, 어느새 창가 밖의 해는 밝게 떠오르고 있었다.
*
「찬열 왕자님은 외동이였는데, 그만큼 왕께서 정말 애지중지하며 키웠답니다.」
「……또…」
「그러던 어느날, 왕자님께서 심심하다고 잠시 밖을 둘러본다고 하셨어요.」
「……」
「그런 왕자님의 곁에는 무려 20명의 호위무사들이 붙어서 함께 밖을 둘러보았답니다.」
「……」
「그런데, 그 때 저 멀리서 고함이 들렸어요. 궁금해진 왕자님은 말의 방향을 돌려 그 쪽으로 가보았답니다.」
오늘도 여김없이 꾸는 꿈에 이제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어제랑 이어지는 건가… 여김없이 내 자신이 왕자님으로 나온다는 것을 보니 조금 어색하기도 해 뒷머리를 긁적이며 들었다. 그 쪽으로 가보았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책을 덮는 녀석의 행동에 나는 또 녀석을 멍하게 쳐다봤다. 어제와 같이 나를 쳐다보는 그 두 눈에 한숨을 살짝 쉬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니 움찔 거리는 녀석을 보아 아, 내가 보이는 구나. 싶었다. 이제는 겁을 먹지 않기로 다짐했다. 평소에는 녀석이 입 아프게 얘기를 많이 하니, 내가 한번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이야기 끝났지?」
「……」
「오늘은 주말이니까, 나 앉아서 많이 얘기할거다. 이번엔 니가 들어줘」
「……」
「항상 동화 얘기… 해주는 것 같은데, 왜 이번은 내가 주인공이야? 너무 오글거려서 디질 것 같아」
「……」
내가 오글거린다며 조금 오버하자 자신의 책이 소중하다는 듯이 꼬옥 끌어안고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살짝 당황해 아니, 뭐… 니 얘기가 싫다는 건 아니고. 그렇게 말하자마자 그제서야 눈에 가득 준 힘을 풀었다. 어쩐지 귀여운 녀석의 모습에 살짝 웃었다.
「넌 주인공으로 안나와?」
「……」
「그러고보니 이름도 모르네. 나랑 영 얘기를 안할려고 하니…」
「……」
「그래도 내가 보이는 건 맞지?」
「……」
너 목소리, 이쁘더라. 내가 말하자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더니 귀까지 빨개지는 모습에 웃겨서 푸하하! 하고 웃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지말라는 듯 등을 지는 행동에 진작에 얘기를 해볼 걸, 하고 조금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나는 질문에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너는 왜 꿈에서만 나타나는 거야?」
「……」
「현실에서도 볼 수 있다면, 정말 좋을텐데…」
「……」
「동화는 왜 짧게 들려주는 거야? 맨날 기다리기도 힘들다.」
「……」
갑자기 녀석이 벌떡 일어나더니 다시 뒤를 돌았다. 잔뜩 빨개진 얼굴로 손을 갑자기 들더니 나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정말로 귀여운 그 모습에 나도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늘, 저녁에 봐.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저 멀리 뛰어갔다.
*
「갑자기 들리는 고함소리에 궁금해진 왕자님은 그 장소로 가보았어요」
「……」
「그 곳에는 두 남자가 있었는데 왜소한 체격을 가진 한 남자가 상처를 가득 달고 있었어요」
「……」
「그 왜소한 남자의 이름은 백현이라고 해요.」
「……백현, 백현…」
「왕자님은 그 모습을 보더니 말에서 내려 뛰어왔어요」
「……」
「당신은 왜, 이 어린 아이를 괴롭히고 있는 것인가? 하고 왕자님이 물었어요」
이제는 익숙한 동화 꿈에 금방 적응을 하고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보니 백현이라는 이름을 들었는데… 설마, 저 아이의 이름이 백현일까. 어쩐지 이름과 어울리는 얼굴에 나 혼자서 녀석의 이름을 백현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어쩐지 오늘따라 길어지는 듯한 이야기에 나는 턱을 괴고 녀석을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녀석은 밝은 얼굴로 신난다는 듯이 동화를 읽어내려갔다.
「왕자님인 것을 깨닫자마자 백현이를 구타하던 남자는 급하게 허리를 숙였어요. 왕, 왕자님!」
「…호오…」
「이 아이는 내가 데려가겠다. 왕자님은 그렇게 말하자마자 누워있던 백현이의 손을 잡고 일으켰어요.」
「오, 나 좀 멋있네」
「놀란 백현이 아무리 왕자님을 불렀지만, 고집이 센 왕자님은 그냥 무시하고 데려가버렸답니다.」
「……야, 나 안그렇거든?」
「……그리고…」
동화를 읽으면서 한껏 밝은 표정을 짓던 녀석이 갑자기 밝던 표정을 지웠다. 그리고는 살짝 나를 쳐다보더니, 두 입술을 꾹 다물었다. 어쩐지 분위기가 살짝 무거워진 것 같았다. 벌써 끝을 달려가는 건가. 그러고보니 항상 끝을 달려갈때면 녀석은 항상 우울해하곤 했다. 한참동안 다물어져 있던 두 입술을 열더니 다시 이야기를 진행했다.
「왕자님은… 백현이를 정성스럽게 보살펴줬어요」
「……」
「그리고… 궁전 안에서는… 소문이 돌았…답니다…」
「……」
「남자인 첩을… 들인 것 같다고… 말이예요…」
「……」
「그 소문을 들은… 백현이는… 왕자님을, 찾아갔어요」
「……」
그리고, …말…했습니…다…. 이 한마디도 어렵게 말하던 녀석은 또 다시 한참동안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나는 그저 책을 꼭 잡고 있는 조그마한 두 손만 지켜볼 뿐이였다. 이내, 녀석의 입이 열렸다.
「돌아…갈래요…」
「……」
「이 말을 들은 왕자님은 무슨 소리냐며 백현이를 다그쳤습니다…」
「……백현아」
「…왕자님…」
녀석, 아니, 백현이가 대사 한마디를 내뱉더니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나를 쳐다봤다. 점점 이상한 기분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백현이 책을 덮었다. 이제, 책은 덮였다. 나는 그저 저 조그마한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든지 듣고싶지 않았다. 그저 입을 막고 싶었을 뿐이였다. 하지만 백현이와 나의 거리는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았다. 마치 당신과 나는 이 선을 넘어서는 안돼요, 라고 말하는 듯한 백현인 것 같아서. 내 마음을 모르는지 백현이는 굳게 닫힌 두 입술을 열었고, 이내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왕자님과… 저는… 안돼요……그렇게, 말한 백…현이는…」
「……그만해」
「…왕자님을, 두…고… 떠났습니다…」
「…백현아!」
“……”
내가 소리를 지르자마자 나는 눈을 떴고,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다른날과는 다르게 한껏 흐른 땀에 손등을 이마 위에다 가져다댔다. 왜, 그렇게 슬퍼했을까. 그리고, 내 이름은 어떻게 안거지. 아니, 무엇보다 나는 꿈 속의 백현의 존재가 궁금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떠오르는 건… 책을 쥐던 조그마한 두 손이 덜덜 떨리는 것과, 그와 비례하듯 한껏 떨리던 목소리… 그리고… 정말 슬프다는 듯이 눈물을 흘리던 두 눈. 물이라도 마실까 싶어서 옆 선반에 손을 올렸을 때 쯔음, 뭔가 잡히는 느낌에 주저하지 않고 그것을 잡았다. 다름아닌 종이였고, 나는 그 종이를 본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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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이게..뭔ㄴ....내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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